기사제목 함안면 북촌리 비봉산에서 풍농(豐農) 기원 사직단 터(조선시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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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면 북촌리 비봉산에서 풍농(豐農) 기원 사직단 터(조선시대) 발견

기사입력 2020.12.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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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조때 함안군수가 한해의 풍년과 평안 기원하던 제사 터

   - 함안읍성 정밀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

 

1229 함안 사직단 터 발견1.jpg

 

함안면 북촌리 비봉산 정상부(해발 101.5m)에서 조선시대 함안 사직단(社稷壇)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함안읍성의 복원에도 청신호로 평가된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냈던 제례 공간으로 조선시대 관아, 향교와 더불어 중요시설로 여겨졌다. 이번에 확인된 함안 사직단은 함안읍성의 서쪽에 위치하며 이는 도성(都城)의 배치원리인 좌묘우사(左廟右社)를 따른 것이다.


29일 함안군에 따르면 함안 사직단은 함주지(咸州誌), 함안 총쇄록(叢瑣錄) 등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그 동안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함안읍성 정밀지표조사와 연이은 발굴(표본)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조사결과 남북으로 8.7m, 동서로 9m 규모의 제단과 이를 둘러싼 유(壝:사직단 주위에 두른 낮은 담장)가 확인됐다. 제단은 사직단의 중심인 정부를 기점으로 사방의 기반암을 깍은 후 방형으로 기단시설이 설치됐다.


유는 남북 27.5m, 동서 29.4m 규모로 홍살문 등 상부시설은 남아있지 않으며 높이 70~125cm의 석축담장이 잔존하고 있다. 이 석축 상부에서는 다량의 기와편이 출토되었으며 기와의 시기는 조선초기로 추정된다. 


함안 사직단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함주지’(1587) ‘함안총쇄록’(1890)에 상세하게 전해지고 있다.


“1587년 봄 군수 정구(鄭逑)가 수리를 하였고, 1892년 군수 오횡묵은 가뭄으로 자시(子時)에 기우제를 거행하였다”라는 기록뿐만 아니라 “사직단의 높이는 3척(尺), 단은 방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25척이고, 그 색깔은 오방색으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제사 때에는 흙 위에 돛 자리를 깔고, 하늘에는 천막을 쳤다”


군 관계자는 “함안 사직단의 발견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함안 사직단의 정확한 위치를 찾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으며, 향후 함안읍성·함안향교와 더불어 조선시대 함안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함안인터넷뉴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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