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 있는데도 단속외면 `치외법권` 지적
지자체 단속-법령개정 시급
가야읍 도항리 조일교 부근.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게시돼 있어 보는 이들의 '왕짜증'을 유발시킨다. 이런 현상은 함안 뿐만이 아니고 전국적이어서 지자체 단속이나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
최근 도내 곳곳이 정치인들의 내건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2일 함안군 교통요지 가야읍 도항리 조일교 부근. 정당의 의견이나 집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게시돼 있다. 이 현수막들은 바로 뒤에 있는 지정 게시대를 아예 가릴 정도다. 미관을 해치는 것도 모자라 누군가는 돈을 내고 홍보를 한 현수막마저 가리면서 자신들만의 이름이나 의견들을 버젓이 내걸고 있다.
▲`불법해고 알리면서 정당현수막 참칭` 경우도
이런 무질서한 현수막은 비단 함안만의 일은 아니다. 같은 시각,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고속도로 진출 교차로에도 무질서한 현수막 사정은 마찬가지다.
거제시, 김해시, 산청군, 함양군, 의령군 등등 경남 도내 사정도 다를 바 없이 정당현수막들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일부는 정당현수막을 참칭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해고를 호소하면서 정당 이름으로 현수막을 거는 행위다.
▲신고없이, 상대방 후보 비방 현수막 게첨 가능
이 같은 왕짜증 현수막들은 불법은 아니다. 지난해 6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고나 허가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민생은 제대로 돌보지 않은 여야가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에서 현수막 개수 제한도, 위치 제한도 모두 없애버렸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여야가 법을 바꾸는 건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다. 평소에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야도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서는 `리그`합의를 도출한다. 지난 해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옥외광고물법 개정도 이런 과정으로 탄생했다.
▲ “법 개정됐으니 어쩔 수 없다?”
전국 대로변에 우후죽순처럼 현수막이 쏟아지고 있고 현수막 실소비자인 유권자들은 상대 당 비난으로 가득한 현수막 전쟁에 "짜증난다"며 피로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단속 권한을 가진 지자체는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법이 개정됐으니 자신들은 "권한없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 통상적 정당활동 경우만 허용 ··· 글자크기도 제한
법상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당 현수막은 정당법에 따른 통상적 정당활동(정당법 제37조 제2항)에 한해 설치할 수 있다. 민주·정당 정치의 발전을 위해 폭넓게 허용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정당이나 공직선거 후보자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함이 없이 △자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홍보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된다.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활동 등도 포함된다. 이 때 △정당 명칭이 반드시 기재되어야 하고 당대표, 당원협의회장(지역위원장)의 직·성명을 포함하여야 한다. 정당 로고만 표시하는 경우는 정당 현수막으로 보지 않는다.
▲ 표시방법·연락처·표시기간 명시해야
표시 방법과 기간에 맞게 설치해야 한다. 정당 명칭·연락처, 설치업체 연락처, 표시기간도 명시해야 한다. 가로로 길게 표시하는 일반적인 현수막의 경우에는 정당 명칭·연락처 등을 작성한 글씨 크기가 현수막 세로 크기의 10% 내외가 되도록 작성하라는 권고도 있다.
단 정당 경비에 따라 제작, 설치하는 현수막만 해당되며 의원이나 당원 등 개인 경비로 설치하는 현수막은 이에 포함하지 않는다. 현수막을 표시·설치하고자 자는 정당의 명칭과 사무실 연락처를 현수막에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 지자체 대부분 단속권한 협회 넘겨 칼질 못해
세세하게 살피면 현재 게시돼 있는 정당 표방 현수막은 거의 대부분이 위법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단속의 손길이 놓고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단속권한을 옥외광고물협회에 넘겼고 이에 따라 (힘없는)협회가 정당의 현수막에 제대로 칼 질을 못하기 때문이다.
법령을 더 살펴보면 선관위 유권해석 등에 따라 통상적 정당활동에 의한 정당 현수막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불법 광고물로서 철거 명령·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 단속권한을 쥐고있는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법은 지자체에도 정당 현수막을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현수막을 정당이 설치했는지, 표시방법과 기간이 작성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정당현수막 여부(내용) 판단에 대해서는 각급 선관위에 질의를 요청하고 안전사고 발생이 심히 우려되는 경우 정당 또는 설치업체 연락을 통해 철거 또는 이동 게첨을 요청해야 한다. 표시기간인 15일을 위반할 경우에도 불법 광고물로서, 철거명령·조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
안전한 생활환경을 위한 최소 제한을 위해 교통수단의 안전과 이용자의 통행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어린이 보호구역 등 사고 취약지역에 설치되거나, 신호기 또는 안전표지를 가리는 등의 방식으로 설치는 제한된다.
교통 신호등이나 CCTV를 가리는 방식의 설치와 사고에 취약한 지역에는 설치를 자제하고, 높이 2~3m 이상 사람 키 높이 이상의 위치에 설치해야 한다.
▲ 지자체 단속업무, 소극적이거나 방기하거나
그러나 현실적으로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게재를 막을 제재는 이뤄지지 않고있는 실정이다. 지자체가 소극적이거나 단속업무를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을 바꾸고 난 후 정당에도 전국적으로 무분별한 현수막 게시의 해악을 알리는 민원이 쏟아졌다. 그러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필요하다면 재검토해서 남발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국힘 주 원내대표 “국민에 대한 도리 아냐”
주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 정쟁으로 국민들이 짜증스러워하는데 곳곳마다 인신공격, 비방형 현수막들이 내걸리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도는 최근 훼손되거나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에 대해 설치 기준을 명확히 하는 법령 개정을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했다. 도는 도시 미관을 해치고 주민 불편이 이어짐에 따라 정당 현수막의 규격과 수량, 위치 등에 대한 서부 설치 기준 마련을 지난 1월 광역지자체 중 처음으로 행안부에 건의했다.
경남도 허동식 도시주택국장은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제도적인 사항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이달 시도 간담회에서 지자체 의견 수렴을 거쳐 법령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 김인교·김동출 기자